법정스님 무소유와 보시 강연 정리 2004년 창원 법문

법정스님 무소유와 보시 강연 관련 포스팅을 하려고 합니다. 

2004년 창원에서 법정 스님 초청 강연회가 열렸습니다. 

무소유와 보시에 대한 강연이었습니다.

 

법정스님 무소유와 보시 강연 - 법정스님_ 강연 모습

적게 가지고 인생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부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도 이 세상에 간혹 있어요. 

그런 괴짜들이 있다고

그런데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사실 가난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 마음이 이미 부자가 됐기 때문에 적게 가지고도 넉넉하게 살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말할 수 없어요. 

물건 귀한 줄 알고 고마운 줄 알고 그렇게 살아야 되는데 우리는 그걸 잃고 있어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졌기 때문에 

스스로 맑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 자기가 선택한 가난이에요. 

불필요한 걸 갖지 않는 것. 꼭 필요한 것만 갖겠다는 이런 생활 신조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절제의 미덕이 있어요. 

스스로 자기 욕망과 욕구를 스스로 억제하고 절제 하는 거에요. 

그들은 밖으로 드러내어 과시하기보다는 안으로 맑고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누릴 줄 압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누릴 줄 알아야 해요. 

즐길 줄 알아야 해요.

또 무엇보다도 마음의 평안을 원합니다. 

마음의 평안, 이것이 제일입니다. 

뭘 잔뜩 쌓아 놓는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다 하더라도 마음이 불안해 보세요. 가시 방석 이라니까.

내 마음이 편안해야 돼요.

마음이 편안하면 설사 갖출 걸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누구 원망할 것도 없고 자기 분수를 자기가 스스로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은 절제의 미덕을 배우려면 우선 적은 것으로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적은 것으로서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기술을 익혀야 돼요.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기술입니다. 

공장에서 뭘 만드는 것만이 기술이 아니고 우리가 인생을 살아 나가는 것, 이것도 하나의 기술이에요. 

먼저 우리들의 삶에 무엇이 중요한 가를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진짜 내 삶에 우리 집안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인가? 이것부터 알아야 돼요.

우선순위가 결정돼야 됩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인가?

어디에다 가치 부여할 할 수 있는 일인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법을 배워야 됩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법을 배워야 돼요. 

자유롭게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그의 삶은 영원히 빈 껍질로 쳐지고 만다고.

겉으로는 화려하더라도 알맹이는 아무것도 없어요. 

괜히 폼만 재다가 한 인생 끝나는 거예요. 

 

남과 비교하지 마세요.

또 삶의 하나의 기술로써 남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남과 비교하지 마세요. 

저마다 자기 몫이 있잖아요. 얼굴이 각각 달라. 또 처지가 각각 달라. 자기 개성이 각각 달라요. 

그러니까 누구 집의 엄마, 누구 집의 아빠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밖에 없는 독특한, 독립된 존귀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각자의 삶의 양식이 달라요. 비교하지 마세요. 

비교하면 괜히 부질없는 일인데 부질없는 일에 비교하게 되면 자칫 시기심이 생기고 기죽게 되고 그런 부작용이 있어요. 

나는 나 답게 살면 되는 거예요. 왜 누구를 닮아?

그렇다고 남한테 해 끼치지 않으면 되는 거지.

우리 집은 우리 집 답게 살면 되는 거예요. 

한 달에 수입이 100만원이든 80만원이든 그 안에서 살면 된다고.

왜 남과 비교해요?

그 안에서 살 줄 알아야 돼요. 

그 안에서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그 전에 비하면 얼마든지 여건이 좋아지지 않았어요. 

외부적인 여건은 얼마나 좋아졌습니까?

그런데 안으로 사람의 가치는 옛날에 비해서 훨씬 하락하고 있다고요. 

우리가 허욕 때문에, 허욕 때문에.

남과 자꾸 비교해서 넘어다 보고 누구 집 아버지는 한 달에 얼마 버는데 우리 아빠는 얼마밖에 못 번다고 이래 가지고 자기에게 주어진 복까지도 감당을 못하고 그냥 흩어버리잖아요. 

그건 어리석은 짓이에요. 남과 비교해서는 안됩니다. 

저마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살 줄 알아야 돼요. 

 

마음에 든다고 성급하게 소유하지 마세요.

둘째로 무엇이든지 마음에 든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성급하게 움켜지지 마세요. 

그 자리에서 성급하게 움켜 잡게 되면 곧 후회가 따릅니다. 

움켜쥐기보다는 쓰다듬어요. 

내가 꼭 사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보고 즐길 수 있으면 된다니까.

좋은 그림이라든가 조각이라든가 글씨라든가 내 집에 우리 집에 들여놓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보면 되잖아요. 

꼭 내 것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면 그건 욕심이에요. 

그거 간수하기 귄찮아지잖아요. 도둑맞기 귀찮아지고 또 없는 돈에 왜 그걸 사. 

보고 즐기면 돼 눈만 있으면 된다고. 

어디든지 가서 보관할 수고도 없이 도둑맞을 걱정도 없이 그렇게 살아야 돼요. 

없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은 사야 되겠지만 남과 비교하지 말라니까 눈만 갖추세요. 

또 목표를 향해 곧바로 직행하기보다는 돌아서 가는 그런 여유를 지녀야 돼요. 그런 풍류를 지녀야 돼요. 

옛 우리 조상들이 지녔던 풍류가 지금 사라져 갑니다. 

그 멋이 삶의 운치가 사라져 가요. 

잔뜩 눈에도 쌍심지를 켜고 움켜 지려고만 하지. 

쓰다듬을 줄을 모른다니까.

내 집안에 이미 갖추고 있는 것도 즐길 줄을 몰라요. 

또 한눈 판다고 남이 가진 것에 한 눈 팔아요. 

최근에 영국에서 들은 얘기인데 런던에 있는 잘 아는 집 아이인데 거기서는 무슨 조기 교육을 시킨다고 이제 깐지 한 7~8개월 밖에 안 됐는데 무슨 학교를 보낸다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여러가지로 생각했어요. 

아이들한테 뭘 장난감을 하나를 준대요. 

네댓 있는 아이들한테.

학교인데. 

그런데 이 아이들이 자기 것 가지고도 또 남의 것을 거기 있는 아이들이 모두 남의 것을 가지려고 하더라네. 

그 7~8개월 밖에 안 된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어떻게 자기 것 놔두고도 남의 것을 갖느냐 이거에요. 

다 아이들이 그러더라네요. 

예외자도 있겠지만 그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그런 인종들이 살고 있는 시대라니까.

직업만 가지고 만족하지 않고 이제 나와서 마르지도 않고 축축한 아이들이 벌써 그런 남의 것에 대해서 눈을 파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런 부모 그런 사회서 자라난 인자들이기 때문에.

그런 사회에서 씨 부려져서 태어난 그런 싹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또 어떤 사람이 좋다고 해서 금방 전화질을 하고 다가서기보다는 이만치서 떨어져서 바라보면서 그리움을 익히는 그런 삶의 기술도 필요해요. 

참고 견디면서 그리워하고, 좀 슬프기도 하고, 옛날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그런 심경도 느껴야 되는데, 너무 맨송맨송해가지고 그냥 즉석에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해요. 이게 현대 우리들입니다. 

잘못된 삶의 기술이에요. 삶은 그리움이 있어야 돼요. 아쉬움도 있어야 된다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사람이 맑아지잖아요. 

자기가 정화가 된다고. 

그런데 그리운 것도 없고, 아쉬운 것도 없고, 완전히 배부른 돼지가 되는 거지요. 

특히 엄마들이 조심해야 돼요. 

이제 경제권도 다 엄마들이 가지고 있잖아요. 

이제 아버지들이 큰소리 못치는 게 다 회사에서 엄마들 통장으로 다 집어 넣어버리니까 이게 그전에는 돈을 가로채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기회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경제권이 주무들한테 이양 되니까 주부들이 그렇게 목에 힘을 주는 거예요. 

그 대신 엄마들이 진짜 똑똑해져야 돼요. 엄마들이 정신 바짝 차려야 돼요. 

 

세워르이 무게를 지닌 낡은 것에 대한 가치를 되살려야 됩니다. (법정스님 무소유와 보시 강연)

또 삶의 기술로써 오래된 것을 아름답게 여기고 세월의 무게를 지닌 낡은 것에 대한 가치를 되살려야 됩니다. 

우리 집안에 한번 돌아보세요. 

할머니 때부터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던 그런 가구가 몇 개가 있는지.

할아버지 때부터 혹은 할머니 때부터 또 아버지가 쓰시던 그 물려받은 가구가 몇개 되는지 돌아보세요. 

낡은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고. 

세월의 무게는 무엇으로도 대행할 수 없습니다.

그 세월 아니면 대체할 수 없어요. 

그런 세월의 무게를 지닌 낡은 것에 대한 가치를 우리가 새롭게 되살려야 돼요. 

받아들여야 돼요. 

모두가 새 가구만 들여놓는다면 집안이 무슨 훈훈하겠어요. 

어디 상처 나고 어디 다리 한 쪽이 떨어져 나갔다 하더라도 집안에서 어른들이 대대로 써내려오는 가구 같은 것을 지녔다는 것은 단지 가구가 아니에요.

그 집안의 어떤 가훈이라든가 가풍이라든가 그런 것까지도 전승이 되는 거예요. 

꼭 필요한 것 만을 가지고 그것도 최소한으로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 귀해요. 

고마워요.

그것을 소중하고 아껴 쓸 줄 알아야 됩니다.

결코 이런 생각은 낡고 소극적인 그런 생활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중 저 자식이 저는 그렇게 사니까 다 그렇게 살라는 데 어떻게 다 그렇게 살아’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오늘날 지구 생태계의 위기 앞에서 새로운 뜻을 갖는 지혜로운 삶의 철학이에요. 

엄마들이, 아버지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산다면, 이 지구가 덜 오염돼요. 

자연 재난이 덜해진다고.

‘나 한 사람 우리 동네에서 이렇게 한다고 해서 전 세계가 어떻게 될까?’ 이렇게 되면 개선될 기약이 없습니다. 

누가 어떻게 살건 간에 나는 그것이 바르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살아야 돼요. 

또 사람은 몸뚱이만이 아니고 영혼을 지녔기 때문에 영혼은 다 하나 입니다. 

한 영혼이 맑으면 그 다른 영혼에까지도 메아리가 있습니다. 

메아리가. 

좋은 일은 그렇게 영향이 있어요. 

우선 나 자신부터 우리 집안에서부터 뭔가 개선돼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살아갈 길이 없다니까요. 

최근에 신문에서도 보도했지요. 

환경위기 시간 세계 지구환경의 위기 세계 기상학자들, 전문가들에게 앙케이트를 줘서 지금 세계 환경위기 시간이 몇시간 되겠는가? 이걸 조사한 기관이 있어요. 일본에 있는데 금년이 최악의 그런 시간이라네요.

9시 15분 12시면 지구 종말이 온데요. 

더 이상 지구가 우리 환경 지구 생태계가 감당을 못한대요. 

2시간 45분 남았다는 거예요. 

 

자신 만의 원을 세우고 사세요. (법정스님 무소유와 보시 강연)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서 이 세상의 모든 현자들은 부처나 보살들은 간절한 원을 세워 살았습니다. 

저마다 간절한 원을 세워 살았다고요. 

불교에도 사홍서원이 있고 여래십대발원문 이런게 있지 않습니까?

신앙생활을 하건 안 하건 저마다 자기 원이 있어야 돼요. 

간절한 소망이 있어야 됩니다.

어떤 성인이 되고 나서 원을 세우는 게 아닙니다. 

그 원의 힘으로써 성인이 된 거예요. 

부처나 보살이 되고 나서 원을 세운 것이 아니라. 

그 소원의 힘으로써 부처와 보살이 됐다니까요. 

이걸 명심하십시오. 

 

기도를 하십시오. (법정스님 무소유와 보시 강연)

가끔 기도들 하십시오. 기도. 

이건 삶의 재충전이에요. 

절에서 꼭 기도 동참해서 그런 기도만이 아니고. 

꼭 절에나 교회만 가서 기도하는 것 아닙니다. 

조용한 시간에 자기 집에서 앉아서 조용히 마음을 들여다보며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또 앞으로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러면서 내가 내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하면서 뒤돌아보면서 기도들 하세요.  

자기 정화는 그런 맑은 시간이 없으면 사람이 그냥 시들해집니다. 

그냥 속물이 되고 만다고.

(기도하는 시간이) 자기 정화하는 시간이에요. 

자기 자신을 가장 맑고 투명하게 세척하는 그런 시간입니다. 

기도들 하십시오. 

꼭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불러야 기도가 되는 거 아닙니다.

아무 잡념 없이 간절한 마음으로 맑은 마음으로 앉아서 그렇게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세요. 자기 삶을 들여다 보십시오. 

그것이 기도입니다. 이런 걸 통해서 삶이 재충전 돼요. 

시들했던 삶에 생기가 생깁니다. 

가치 의식이 바뀌고 사람의 선 자리가 날로 위태로워져 가고 있는 이런 험난한 세상에서 원을 세우지 않으면 늘 흔들려요. 

어떤 어려운 환경에 처하더라도 원만 있다면 원만 굳세다면 늘 그걸 뚫고 이기고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생깁니다. 

원들 세우고 사십시오,. 가끔 기도들을 하세요. 

자기 자신을 그렇게 세파로부터 오염된 자기 자신을 그렇게 맑고 투명하게 씻는 그런 시간들을 가져야 됩니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런 원이 아니라 구체적인 원들을 세우십시오. 

그 원을 통해서 우리가 한걸음 한걸음 인간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모든 성인들의 가르침은 크게 나누어 다름 2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성인들의 가르침 1 – 남을 도우세요. (법정스님 무소유와 보시 강연)

첫째는 남을 도우라는 거예요. 남을 도우라는 겁니다. 

명심하십시오. 

남이 누구입니까? 크게 보면 또 다른 나라고. 나의 분신이에요. 

아무개를 할 때 그 사람 체중 몇 킬로 목소리를 어떻게 지니고 그게 다가 아닙니다. 

그와 관련된 세계가 바로 그 사람을 이루고 있어요. 

그 사람이 어떤 관계된 세계를 지니고 있냐에 대해서 그 사람을 인생으로서 가치 평가할 수 있는 겁니다. 

남을 도우라고 할 때 

‘우리 집 새끼도 못 돕고 있는데 무슨 남이야?’

할지 모르지만 크게 보면 또 다른 나라니까요. 

또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는 듯 모르는 듯 남의 도움을 얼마나 많이 받아왔습니까? 

친정 엄마뿐이 아니고 남의 도움을 얼마나 많이 받아왔어요? 

이걸 생각해보세요. 

이제는 우리가 도울 차례예요. 도울 차례라고. 

그래서 불교에서는 보시를 제일 바라밀.

첫째가는 바라밀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보시. 보시. 나누는 일이에요. 

나눈다고 할 때 꼭 물질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부드러운 말 한마디라도 나눌 수 있는 거예요. 

내 것이 있어야 나누지. 

말도 안돼. 

꼭 물질적인 것만 생각하지 마세요. 나눈다는 것은 우선 마음이 가야 돼요. 

마음이 가야 물질이 따라가는 것이지. 마음이 열리지 않고 물질이 어떻게 갑니까? 

마지못해 싫어 싫어 하면서 남의 체면이나 보면서 주는 것 그건 주는 게 아니에요. 

남을 도우며 살아야 됩니다. 

남이란 거듭 말씀드립니다. 타인이 무연한 타인이 아니고 또 다른 나예요. 나의 분신입니다. 

 

성인들의 가르침 2 –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마세요. (법정스님 무소유와 보시 강연)

둘째 남을 도울 수 없다면 그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거예요. 

남을 돕고 살아야 되는데 첫째는 남을 도우라는 건데 만약 처지가 그렇지 않아서 마음이 열리지 않아서 남을 도울 수 없다면 해를 끼치지 말라는 거예요. 

남을 도우면 도움을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 다 같이 충만해집니다. 

사실 우리들이 경험해보면 받을 때 보다도 줄 때가 훨씬 마음이 뿌듯하잖아요. 

누가 보건 안 보건 나눔이란 그런 거예요. 

나눔이란 그런 거라고. 

받을 때 받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부담스러워요. 

그런데 나누는 것은 뿌듯하다고.

좋은 일이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는 하루에도 몇 차례 씩 거울을 들여다 봅니다. 

여기 오실 때도 저 현품 대조한다고 겨울 들 몇 번 들여다보고 찍고 바르고 그랬겠지요. 좋은 일이에요. 

그러나 정작 그 얼굴의 실체인 자기 내면의 얼굴 속 얼굴도 들여다 보세요.  

겉으로 거울에 나타난 그 얼굴들은 가짜예요. 

그건 진짜 내 얼굴이 아니라니까요.

거울에 나타나지 않는 속 얼굴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된다니까요.

요즘 그런 거울이 많이 나와 있잖아요. 시중에.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거울을 들여다볼 때 거죽의 얼굴만 보지 말고 자기 속 얼굴도 볼 수 있어야 됩니다. 

문단속은 잘하면서도 마음 단속은 까맣게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내가 내 인생을 순간 순간 어떻게 맞이하고 있는가?

늘 그걸 반성해야 돼요.

 

법정스님 무소유와 보시 강연 – 인생은 행운이다.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인생은 행운이라고 그랬습니다. 그 사람에게 주어진 행운이예요. 

우리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과 기운을 어떻게 내가 지금 소망하고 있는가?

어떻게 쓰고 있는가? 

밝은 쪽으로 쓰고 있는가?

어두운 쪽으로 쓰고 있는가?

화내는 쪽으로 쓰고 있는가? 

웃는 쪽으로 쓰고 있는가? 

늘 살펴야 됩니다. 

내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이예요. 

무한한 시간이 아닙니다. 

또 에너지를 체력을 어떻게 내가 지금 소망하고 있는가? 

또 오늘 만난 이웃을 내가 어떻게 대했는가?

오늘 내가 만난 이웃을 내가 어떻게 대했는가?

이것을 살펴야 됩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돼 있습니다.

시간의 잔고에는 노소가 따로 없어요. 

남은 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 

한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순간 순간을 헛되이 보내서는 안됩니다. 

자기 인생을 마지막 날처럼 그렇게 살 수 있어야 돼요. 

내 인생이 오늘로써 끝난다고 한번 상상해보세요. 

한 순간인들 헛되이 보내겠어요?

내 인생이 아무개네 엄마가. 아무개네 아버지가. 내일로써 이 지구에서 하차하게 된다고 생각해보세요. 

순간 순간이 정말 간절하지요. 그렇게 살 수 있어야 돼요. 

그런데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주어진 행운을 헛되게 소모해서는 안됩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감사한 마음으로써 우리가 사람 답게 살 수 있어야 돼요. 

나 혼자만이 아니라 많은 생명들. 많은 생명들하고 같이 어울려서 커다란 어떤 생명의 흐름을 이루고 있습니다. 

나무가 됐건 돌이 됐건 흙이 됐건 물이 됐건 없어서 못 살아요. 

다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서로가 주고 받으며 살아요. 

그런 생태계라 그렇습니다. 

생명의 흐름에 어떤 기운을 줘야지 어떤 긍정적인 그런 도움을 줘야지.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거예요. 

지금 현재 이 지구는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가꾸어서 우리에게 물려주는 생태계예요. 

그렇다면 우리 때 잘 가꿔서 이 다음 우리 후손에게도 물려줘야 돼요. 

우리 대에 너무 함부로 허물고 탕진하고 오염시킨다면 우리가 뭘 물려주겠어요. 

우리 후손이 다른 게 아닙니다. 우리 내생이에요. 

우리 후손이란 추상적인 후손들이 아니라니까.

이 다음의 우리 생애예요. 

이 다음 우리를 위해서도 지금 우리가 그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순간 순간을 헛되이 보내서는 안됩니다. 

하루 하루 충만한 삶을 살도록 늘 깨어 있어야 돼요. 

 

법정스님 무소유와 보시 강연 – 내일로 미루지 마세요. 

무슨 일이든 내일로 미루지 마세요. 

내일은 없어요. 

게으른 사람들이 쉽게 다음으로 미룬다고. 내일은 없다니까.

늘 오늘이에요. 

늘 지금이에요. 

내일 없습니다.

늘 지금이라니까요. 

마음 먹었으면 지금 단박 해결이 돼야 돼요. 

오늘 저를 만난 인연으로 해서 혹시 그 동안에 소원했던 친구 사이 라든가 이웃이 있다면 오늘 가서 마음을 풀어버리세요. 

그러면 좋은 날이 됩니다. 

자존심 그거 어디에도 쓸 데가 없으니까 

내가 한 생각 돌이켜서 오늘 아무개 스님을 만났는데 

그 스님이 끝에 가서 그렇게 마음 열고 편안하게 어디도 꺼리낌 없이 살라고 당부를 했는데 좋다.

내가 그동안 묵은 빚을 오늘 갚으리라 해서 자존심 접어두고 전화를 하건 직접 만나건 간에 쌓인 게 있으면 풀어버리세요. 

그래야 내일이 좋은 날이 돼요. 

그런 각오로 하루하루를 사세요. 

그러면 하루하루가 새롭다고 그렇게 살 수 있어야 돼요. 

그건 돈 드는 거 아닙니다. 내 마음 거기 탓이라니까

내 마음에 따라서 내가 부자로 살 수 있고 가난한 사람으로 살 수 있다고 아까 그랬지 않습니까?

늘 마음을 밝은 쪽으로, 즐거운 쪽으로, 남한테 덕이 되도록. 그렇게 써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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