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 복복서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
먼저 영화를 본 뒤에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영화도 재밌지만 책은 더 재밌습니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
“혼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혼돈이 당신을 쳐다본다.” -니체
좀 혼돈스러웠습니다.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살인자의 이야기니까요.
“그러므로 공 空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 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형체와 소리, 냄새와 맛과 감촉과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의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190/224
책 뒷부분의 해설서를 보니 더 난해해졌습니다. 불교관점도 상당히 녹아 있구나 싶었습니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일으킬지니라”
205/224
시간이 좀 지난 후에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 그리고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과 느낌과 생각은 기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으켜 세워진 허상이기 쉽다. 그러므로 그 허상들에 집착하며 고통을 받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무명無明)인가.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색色)이 기실 텅 비어 있음(공空)을 깨닫는 것, 그 깨달음에 도달하는 길을 별다른 것으로 착각하여 수행의 방편에 또다시 집착하고 편견을 만들어내는 모든 일 또한 기실은 텅 비어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 것, 그렇게 해서 우리의 평범한 일상, 삶의 한복판이 이미 우주의 비의秘義와 일치하고 있음(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는 것, 그것이 근심과 고통의 간섭 없이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해탈解脫)이다. 아마도 이것은 공空을 강조하는, 앞에서 인용된 반야심경의 가르침일 것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다소 관념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러나 이러한 관념들이 우리를 고통에서 구제해 평온의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바로 이 방향이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는 끔찍하게 무섭다.
202/224
불교에서는 비어있음을 추구하는데 아무 집착이 없이 마음을 비우는 것을 뜻하고 그것을 해탈이라고 부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딸을 지키고 싶은 의지와 집착이 있는데도 강제적으로 기억이 사라지는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상황에서 또 다른 살인자와의 조우는 끔찍하게 무서운 설정입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다소 난해한 책이었습니다만 굉장히 흡입력이 있는 글이었습니다.
책소개에 보면
뚜렷한 선악 구도에서 벗어난 출구 없는 서사, 어디까지가 허구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경계가 모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화자의 강렬한 독백, 관습적 사고를 교란하는 촌철살인의 문장들은 『살인자의 기억법』이 왜 김영하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독창적인 소설로 꼽혀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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